도움받는 기분

🔖 히시

나는 오래도록 사랑에 대해 생각해왔어, 히시. 그렇지만 이 두려움이 우리를 데려가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온도와 검정일 뿐이야?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고 어떤 것도 붙잡을 수 없을 때. 가까스로 기어 뭍에 다다를 때.

너는 웃으며 서 있었지. 내 이마에 총구를 겨눈 채.

단 한 마디, 가방 내놔. 그 단 한 마디가 전부였지.

그렇지만 무엇도 예감할 수 없는 이 심연 속에서 내가 네게 준 건 단지 그림자뿐이었을까. 그럴까. 너의 마음은 전부 가짜였을까. 내가 끝없이 속으로 물을 때.

혼자. 푸른 물. 마침표 다음 첫 문장. 눈 내리는 사막. 미납 연체. 흉터. 달력. 거울. 산호. 빈 유리병. 혼자 푸른 물속을 떠돌아. 첫 문장 뒤에 찍힌 마침표. 거울 속으로든 걸어 들어가면 사막. 사막을 지나서 안데스. 바닷가에서 주운 산호. 달력에 표시된 귀국 날짜. 정말로 돌아갈 수 있을까, 묻곤 해. 그래도 네 눈. 초록. 빛. 아주 작은 숨소리. 돌려줄 수 없는 마음과 돌려받을 수 없는 마음. 어깨에는 화상 자국. 콜라를 나눠 마시던 벤치. 빈 병을 불어내던 고동 소리. 이제 혼자.

알 수 없어 떠돌기 시작했는데 점점 더 알 수 없어졌어. 봐, 내 눈을. 내 눈이 뿜어내는 어두운 빛을, 봐. 너는 잠이 오지 않는 밤 뒤척이다 문득 떠올릴 거야. 그리고 중요한 것을 영원히 부숴버렸다는 고통에 내내 뒤척이게 될 거야. 히시.


🔖 1g의 영혼

거꾸로 매달린 새에 관해 거의 추락에 가까운 자세로 흩어지는 그림자에 관해 나는 썼다 그것은 호흡과 가장 깊은 잠 속에 빠진 네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1g의 영혼이라고 했다 어떤 사건은 영혼의 각도를 틀어놓는데, 결코 수정될 수 없는 비틀림도 있다 그런 순간들을 여러 차례 관통하다 보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아주 단순한 표정을 하고 너는 내게 말했지